차의 역사
차 마시기는 전한 시대인 BC 59년에 만들어진 노예매매 계약서인 "동약"에 남자종의 할 일중에 차를 사오고 대접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를 기원으로 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김해 백월산의 죽로차가 가락국의 김수로 왕의 왕비인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이 이능화의 "조선 불교 통사"에 실려 있으며 그 성행은 828년(흥덕왕 3년) 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종자를 가져다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영남과 호남 지방은 우리 나라 차의 본 고장이 되었으나 그 생산량이 국한되어 수요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차가 수입되었으며 구한말과 일제시대에는 일본차가 수입되기도 하였다.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차는 삼국·고려시대에는 많이 유행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많이 쇠퇴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에 의해 차의 생산과 보급, 한국차에 대한 연구, 다도 교육 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한 방편으로 이루어졌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1960년대에 관심이 일기 시작하여 1970년 후반부터 많은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의 차는 당나라 때부터 중국차가 주변 국가로 전파되어 13세기에는 몽고에, 19세기에는 서부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에 전파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차재배는 유럽의 식민지 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인도는 1823년 영국 동인도 회사의 R.브루스 형제가 아샘차를 발견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차 생산국으로 부상 하기도 하였다.

유럽에 중국차가 알려진 것은 1559년 베네치아의 G.라무시오의 "항해와 여행"에 의해서이며 1609년 세계의 해상 제패권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넘어간 이후 이들 국가의 동인도 회사에 의해 유럽 각지로 전파되어서 영국은 홍차 문화의 발생지가 되었고 으뜸가는 차의 소비국이 되었다. 차는 또한 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차 전매권 인정 법령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다.